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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기획 및 제작 STUDIO

화요일 오후 2시. 약속시간이 다 됐다. 장형윤 감독의 스튜디오 ‘지금이 아니면 안 돼’가 자리한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장 감독은 아직 도착 전이란다. <무림일검의 사생활> 포스터가 붙어 있는 A동 203호에 먼저 들어섰더니 사무실 짬밥으론 막내인 홍덕표 프로듀서가 미안한지 연신 음료수를 내온다. 옥수수차와 오렌지주스만으로도 모자라 귀한 커피까지. 오랫동안 장형윤 감독과 일해온 박지연 작화감독(캐릭터에 움직임을 불어넣는 스탭. 장형윤 감독은 촬영감독에, 박지연 작화감독은 배우에 더 가깝다고 소개했다)도 객들이 무료할까봐 과거사를 꺼낸다. “첫날 저보고 오전 9시까지 오라고 해서 갔어요. 약속 시간에 맞춰서 나왔기에 ‘참 성실한 사람이구나’ 했죠. 말도 진중하게 하고.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서는 오후가 돼야 겨우 나오는 거예요. 실상은 그랬던 거죠.”

<무림일검의 사생활>
<무림일검의 사생활>

장 감독은 채찍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박지연 작화감독의 흉을 듣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Now or Never!’ ‘지금이 아니면 안 돼!’라는 철의 규율이 ‘꼭 지금이어야만 하나?’라는 나른한 반문처럼 들려서다. “우리 평소엔 안 그래요. 오늘만 한가한 건데….”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장형윤 감독은 전날까지만 해도 <무림일검의 사생활> 영사 상태를 확인하고 청년필름과 함께 기획 개발 중인 장편애니메이션 회의를 진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고 항변이다. 그러더니 인터뷰 도중 불쑥 “오늘 같은 날은 맥주 한잔 마시면 좋겠는데”라는 속내를 내비친다. 자신의 작업 원칙은 “사소한 것엔 신경 쓰지 않는 대범한 대충주의”라고 곁들이면서. 팀원들 또한 그의 무사태평이 싫지만은 않은 눈치다. 박지연 작화감독은 “밑의 사람 너무 깐깐하게 부리는 애니메이션 회사가 싫어서 나왔는데 장 감독은 시안 건네주면 대부분 오케이라 편하긴 하다”고 깔깔댄다.

장 감독이 ‘지금이 아니면 안 돼’를 차린 건 2005년이다. 처음엔 ‘지금 아니면 안 돼. 나중엔 너도 나도 변할 테니까. 사랑도 음악도 시도 영화도 지금이 아니면 안 돼’였다. 엄청나게 길고 로맨틱한 회사명을 제출했다가 구청과 세무소 직원의 눈총을 받을까봐 비교적 단출한 지금의 이름으로 줄였고, 이마저도 칭하기가 쉽지 않아 아는 사람들끼리는 ‘지금이’라고 부르고 있다. 장편애니메이션 준비 때문에 감독, 작화감독, 프로듀서의 역할로 나누긴 했지만 장 감독을 제외한 두 사람도 이름있는 애니메이션 감독들이다. 홍덕표 프로듀서는 얼마 전 개봉한 <별별이야기2: 여섯 빛깔 무지개>에서 포경수술을 둘러싼 부자간의 신경전을 담은 코믹한 단편을 연출했고, 그 이전에 <남자다운 수다>(2004)로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박지연 작화감독도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로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우수상을 차지한 재능이다.

장형윤: 처음에는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 줄 알았지.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고.
박지연: 그림에 소질이 있어. 네 스타일이 있잖아. 남들이 흉내 못 내는.
홍덕표: 영진위 지원작 선정 때 얼마나 잘하는 놈인가 두고보자 그랬지. 근데 만들고 보니까 내가 졌던데.

든든한 관객으로서, 믿음직한 동료로서 이들이 첫손에 꼽는 장 감독의 작품은 단연 <무림일검의 사생활>이다. 상영시간이 30분이나 되는 중편이어서만은 아니다. 전작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역동적인 장면’ 연출에도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몇번 꼬였는데 잘 안 넘어갔어요.”(박지연) “매번 네 그림은 딱지 그림이라고 놀렸죠. 입체감이 없으니까.”(홍덕표) 장형윤 감독을 오래 지켜본 연상호 감독도 한때 그의 애니메이션의 특징 중 하나로 ‘어설픔’을 꼽은 적 있다. “많이들 그러세요. 제 단편들 보면 어설퍼 보인다고. 내레이션이 대표적이에요. 이진석이라고 영화아카데미 동기가 <편지> 때부터 쭉 내레이션을 했는데 왜 직업 성우를 쓰지 않느냐는 말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테스트 녹음을 해보니까 성우의 능숙한 목소리 연기가 제 작업에 안 어울리는 거에요. 나중에는 성우한테 준 돈 진석이 택시비나 더 줄걸, 그랬죠. (웃음)”

장형윤표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모두들 ‘어설픔’이라 부르는 여백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의 캐릭터들은 느리고, 볼품이 없으며, 사실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오래 지켜보게 되고, 그들의 미동 하나에도 입맛을 다시게 된다. <티타임>에서 뇌수를 끓여 차를 마시는 남녀나 <편지>에서 우체국에 잠복한 공룡을 진짜배기처럼 그렸다면 기묘한 연애담이 ‘호러물’ 혹은 ‘괴수물’로 오인되지 않았을까. 물론 디테일한 터치 대신 간단한 선으로, 클로즈업 대신 롱숏으로 ‘정서’를 전달하려고 했던 그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아빠가 필요해>는 전작들과 달리 배경이 꽉 차 있어요. 누군가는 네 그림하고 안 맞는다고 조언도 했고. 그런데 <편지>를 끝내고 나니까 비주얼에 조금 욕심이 생기는 거예요, <아빠가 필요해>를 끝내니까 스토리텔링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 싶고. 그래서 <무림일검의 사생활>이 나온 것이고.”

박지연: 너는 좀 웃기긴 해. 썰렁해서 그렇지만.
홍덕표: 뭔가 끊임없이 변신하려고 하는 게 좋아 보이지. 내 꿈이 유능한 감독 발굴해서 성공시키는 건데.
장형윤: 넌 내가 데리고 왔잖아.

<아빠가 필요해> 이전에도 또 한차례 중요한 변곡점이 있긴 했다. 그동안 그가 만들어왔던 단편들의 어설픈 만듦새를 외려 장점으로 돋보이게 만드는 건 연신 키득거릴 수밖에 없는 장형윤식 유머 덕분인데, 이는 처음부터 작정하고 집어넣은 게 아니다. “<어쩌면…>은 초기 단편들 중 가장 공들인 회화적인 애니메이션이에요. 그런데 인디포럼에서 상영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예요. 일본 관객은 상영 도중 반응을 보이는 것이 결례라고 생각해요. 서양 관객은 그 반대이고. 한국 관객은 그 중간인데 야유할 것은 덮어주고 재밌는 것을 열심히 찾는 열성 관객이죠. 그런데 무반응이라니. 내 생각을 거칠게 구겨넣는다고 될 문제가 아니구나 깨달았어요. 그러다가 <편지> 작업 때 <어쩌면…>과 달리 반응이 나쁘지 않았던 <티타임>을 떠올리며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따져보게 됐죠.”

머리에 고인 빗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르륵 받아내는 남자(<티타임>)에서 조금씩 가동한 장형윤 감독의 ‘썰렁하고 시큼한’ 유머는 이후 캐릭터를 빚는 주요 양념으로까지 발전한다. 편지를 훔쳐먹다 눈을 씀벅이며 귀여운 척을 하는 공룡(<편지>)에 이어 <아빠가 필요해>에서는 냉장고에 잡아둔 사슴을 먹으려다 딸에게 발각된 뒤 곧바로 뱉어내고서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딴청 부리는 늑대가 등장한다. 칼 맞고 목숨을 잃은 뒤 그의 바람대로 강철 커피자판기로 태어나는 무림고수 진영영(<무림일검의 사생활>)의 상대는 무시무시한 적이 아니라 빨간 스카프 두른 북극곰이다. “가끔 영악한 아이들의 순진한 표정을 볼 때면 ‘You Win!’ 하고 두손 들 때가 있어요. 얼룩말이나 곰돌이를 고수로 설정한 것도 그 때문인데 그런 의외성 때문에 관객이 많이 좋아하는 것 같고. 장르의 관습을 가져오되 비틀 수 있는 건 비틀어가는 식이죠.”


홍덕표: 극영화에는 안 그러면서 애니메이션은 독창성을 유독 강조해. 네 애니메이션을 두고서도 미야자키 하야오 이야길 하니까. 지브리는 장르라고 볼 수도 있는 건데 말이야.
장형윤: 사실 내게 더 큰 영향을 끼친 건 왕가위인데.
박지연: 왕가위야 우리가 모두 좋아하는 감독이지. 그러고 보니 공통점이 하나 더 있네.

‘도시무협환생로맨스’라고 부를 수 있는 <무림일검의 사생활>은 장 감독과 그의 동료들에겐 절반의 성공이다. 1년의 작업 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50분이 다 되는 시나리오”를 러닝타임에 맞게 줄여내는 일이었다. “원래는 진영영의 환생 전 이야기가 더 있어요. <은행나무 침대>랑 더 비슷한데 공주는 동물원의 악어이고, 진영영은 악어를 지키는 커피자판기였죠. 그런데 그걸 제작지원을 받기 위해 뭉텅 드러내면서 공주 이야길 모두 걷어냈어요.” 심하게 절단 수술을 하다보니 <무림일검의 사생활>은 뜯어보면 이상한 데도 많다. “커피자판기가 코드를 뽑는 순간이나 인간으로 변신하는 대목도 제멋대로이고, 대학생인 여주인공이 때론 소녀처럼 보이기도 하고, 갑자기 자판기 크기가 줄어들기도 하고. 다른 애니메이터들에겐 심각한 오류처럼 보이기도 할 거예요. 저야 별수있나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우겼죠.”

현재 기획단계에 있는 장편애니메이션은 비밀리에 진행 중이다. “밤마다 동물로 변하는 여자를 만나는 뮤지션”이 등장하는 이야기라고 알려졌으나, 세 사람은 그렇게 썼다가는 분명 오보가 될 것이라며 고개를 젓는다. 어쨌든 조심스레 추정한다면, 결핍의 존재들이 어깨동무하고 공생하는 분위기만은 여전하지 않을까. 이들의 신작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주선한 투자자들과 회합 자리인 NAFF2008 행사 무렵 정도가 돼야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날 예정이다. “한국에서 장편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건 건빵에서 별사탕 찾는 일보다 더 어렵죠.”“한해 쏟아져 나오는 애니메이션 학과 졸업생들이 무려 6천명이 넘잖아요. 그들은 지금 다 어디서 무엇을 할까요?” “이들과 계속 함께 작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헤어지기 싫거든요. 맘 맞는 사람하고 일하는 것만큼 행복한 게 어딨다고.”

올 여름 장형윤 감독의 우려와 홍덕표 프로듀서의 자조와 박지연 작화감독의 바람은 “지금 아니면 안 돼!”라고 서로를 다독이며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타진할 것이다.

스튜디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멤버 인적사항

◎ 장형윤

스무살 언저리까지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해 부를 축적하는 삶을 꿈꿨다. 수능점수 가라사대 경영학과 대신 정치외교학과를 택한 뒤 6개월 만에 그의 바람은 휴짓조각이 됐다. 토익 공부를 하다 갑자기 구토 증세를 경험했고 반미 감정까지 솟았다. 초일류기업에서 부속품처럼 살아가기에는 부적절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랑처럼 존재를 불태울 수 있는 작업이 뭘까 고민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과 글과 음악을 한데 버무릴 수 있는 애니메이션에 입문키로 마음먹는다. 그림 실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그는 ‘고수입 보장’ ‘미래유망직종’이라는 간판을 내건 노량진의 한 애니메이션 학원에 등록했으나 강사들이 입시를 코앞에 둔 고딩들에게만 관심을 쏟는 바람에 화실에서 나 홀로 벽돌만 그리다가 한달도 채우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이 무렵 애니메이션 회사에 무작정 찾아가 결의를 밝히기도 했지만 캠퍼스에서 젖 더 먹고 오라는 핀잔만 들었다. 군에서 제대하고 1999년 ‘미메시스 디지털 애니메이션 워크숍’을 듣지 않았으면 그의 방황은 더 오래 지속됐을지 모른다. 전승일 감독 아래서 기초를 다진 뒤 2002년 한국영화아카데미 18기로 턱걸이 입학했고, 안종혁 교수와 이성강 감독의 지도 아래 무공을 키운 그는 최우수 졸업생으로 뽑히기도 했다.



◎ 박지연

장형윤 감독의 <편지>에 등장하는 아미처럼 과거 그녀도 우체국 직원이었다. 소도시의 한가한 우체국이라 우편물 취급보다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일이 더 많았다고 한다. 원치 않았던 우체국 요양생활은 이내 따분해졌고, 취미였던 그림 그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볼 요량으로 사표를 던졌다. 이와 동시에 집에서 쫓겨나는 변을 당하기도 했다. 공무원 제일주의를 항상 강조하셨고, 사윗감도 공무원이어야 한다고 되뇌셨던 아버지와의 갈등을 뒤로하고 찾아간 곳이 동화작업을 주로 하는 애니메이션 회사. 한달에 30만원씩 받으며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동화, 채색 작업을 했다. 라디오 켜놓고 캐릭터에 색깔 입히는 회사 분위기가 흡사 70, 80년대 봉제공장과 다름없었다고. 제 그림 그리고 싶어 공무원 시절 모아둔 돈 싸짊어지고 서울행을 택했지만 결과는 질식과 혼절이 반복되는 애니메이션 공장에서의 노동자. 갑갑함이 오죽했을까. 선배의 도움으로 남들보다 빠르게 원화 작업 아래 단계인 레이아웃, 클린업 작업을 맡을 수 있었다지만 억눌린 욕구가 쉽사리 펴지진 않았다. 이후 동화회사에서 나와 ‘연필로 명상하기’에서 처음으로 창작의 쾌감을 맛봤고, 애니메이션 학원에서 강사 일을 하던 중에 “실력보다는 성실한” 스탭을 찾는 장형윤 감독에게 “나는 성실할뿐더러 실력도 좋다”는 자만에 찬 메일을 보낸 것을 계기로 <티타임> 때부터 함께 작업해왔다.



◎ 홍덕표

‘지금이 아니면 안 돼’(nowornever) 멤버 중 유일한 애니메이션 전공자. 계원조형예술대학 애니메이션과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 대부분의 과목은 ‘양 혹은 가’로 도배했으나 미술시간만큼은 우등생이었다고 전해진다. 고등학교 졸업 뒤에 곧바로 애니메이션 학과에 진학했던 건 아니다. 만화방을 전전하며 대본소 만화를 탐독했던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박모 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그때만 하더라도 대본소 만화가 꽤 인기있던 터라 벌이도 쏠쏠할 것이라고 여겼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지하 작업실에서 밥 먹을 때만 제외하고 그림만 그리는 일이 이내 싫증났고, 제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 1997년 대학을 택했다. 입학 당시만 하더라도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다르다는 걸 몰랐다. 또 다른 세계의 재미를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입학과 동시에 자퇴서를 내고 도망쳐나왔을 것이다. 졸업 뒤에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직했으나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곧바로 개인 작업에 몰두했다. 조금만 더 고생하면 감독 시켜주겠다는 회사의 회유가 믿기지 않았을뿐더러 이러다간 고작해야 엔지니어밖에 안 되겠구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장형윤 감독과의 인연은 2004년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작에 함께 선정됐을 때부터 시작됐다. 같이 선정작에 올랐지만 심사평에 장형윤 감독의 <아빠가 필요해>만 언급되는 바람에 묘한 경쟁심을 갖게 됐고, 그 바람에 한동안 거리두기를 시도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내일은 모르는 일. 장 감독의 장편애니메이션 작업이 진행된 뒤 프로듀서로 스카우트되어 스튜디오 안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글: 이영진 기자
사진 : 오계옥 기자
출처 : www.cine21.com

Posted by 지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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