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일상2009/12/24 01:37
 

지난 2년을 장편 애니메이션을 기획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중편 '무림일검의 사생활'이 끝나고 영화사와 공동제작의 형식으로 혹시나 상업영화 규모의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획을 시작했었다.

하지만 2년 동안 경험해 보니 막연한 기대로는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업자본은 이미 떠나가 버렸다. 2007년 한국영화산업이 -60%는 라는 최악의 수익률을 기록하였고 투자가 얼어붇기 시작했으며 많은 데뷔를 기다리는 젊은 감독들의 프로젝트가 영화사의 차기작 리스트에서  사라졌다.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 나빠서 큰 영화사 주도의 애니메이션 기획도 잘 투자를 못 받는 상황이다.

결국 2007년 천년여우 여우비를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는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이 개봉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애니메이션은 망할 것이 뻔한데 왜 투자하냐는 투자회사 관계자도 만나본 적이 있다.

애니메이션이 투자가 더 안되는 이유는 유명 배우도 없고 브랜드 있는 감독도, 회사도 없기 때문이다. 임수정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봉준호가 감독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픽사가 만드는 것도 아니고 지난 10년동안 성공한 작품도 없다면 내가 투자자라도 주저 할 것 같긴 하다.

이러한 이유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하고 현장의 감독들은 본의 아니게 명랑해전을 치루어야 하는 이순신 장군 같은 심정이 되어버린다.

"해볼 만큼 해봤는데 다른 일을 하는게 낫지 않아?"
"차라리 먼저 만화로 만들어 보는 거이 어때?"
"너도 실사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주변에서 그렇게들 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에게는 아직 열 두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라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어진다.

어째든 '문학은 죽었다'와 '요즘 애들은 버릇없다' 같이 아주 오래된 말이지만 '한국에서 장편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

그렇게 어렵다면  단편을 계속 만들면 안될까? 음........안될 것 같다. 물론 긴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다른 이유로, 단편만 계속 만들어서는 애니메이션을 직업으로 할 수가 없다는 이유가 있다.
 현실적으로 유통이 안되기 때문이다. 영화제를 중심으로 상영되는 단편은 역시 많은 관객과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작품을 재 생산해 내는 수익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단편 작가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시간 강사가 되든지 가계를 차리든지 다른 수익원이 필요해 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TV시리즈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현실적으로 TV애니메이션은  4~5세 이상을 타킷으로 한 작품은 제작이 힘들다. 주로 방송에서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는 시간은 오후 4시인데 그 시간에는 청소년들은 집에서 TV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상의 아이들은 학원에 가있거나 뭔가를 하고 있다. 연령이 높은 애니메이션은 역시 시장이 없다.
물론 애니메이션이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많은 보는 것은 사실이다. 나도 아이들과 같이 봐도 문제가 없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성인의 문화적 욕구까지 충족시키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는 없을까?
나는 내가 느꼈던  어떤 느낌들을 동시대에 사람들과 공유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그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장편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또 독립애니메이션 되어 버렸다.

이제는 '한 겨울의 산딸기' 든 '드래곤의 하트'든 필요하다면 뭐라도 구해와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과도한 임무를 부여받고 각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감독들이 유일하게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이다. 퀄리티나 개봉관의 숫자, 관객의 숫자는 둘째 문제이다. 어떻게든 만들어서 빨리 극장에 걸어야 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다.

상업적인 투자를 받으면 좋지만 그것만을 바라보고 몇년을 허비해서는 안된다.
보폭이 작아도 한 걸음씩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않는 애니메이션 감독이라니, 그게 정말 최악이다.


Posted by 장형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