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영화협회와 ‘독립’이라는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KIAFA)는 한독협 10년을 어떻게 바라볼까. 또 독립‘애니메이션’은 독립영화와 어떤 부분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또 다른 고민을 할까. 한독협의 패밀리 KIAFA의 젊은 이사이자 독립애니메이션계의 유망주 홍덕표 감독을 만나봤다. 홍덕표 감독은 현재 장형윤 감독, 박지연 감독과 함께 스튜디오 ‘지금이 아니면 안돼’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을 기획하고 있다. KIAFA의 이사로서, 독립영화인으로서 홍덕표 감독이 바라보는 한독협 10년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기 위해 남산애니메이션센터 내에 위치한 스튜디오를 찾았다.
이사가 참 젊다.(웃음)
하하. 독립애니메이션의 역사가 길지도 않다보니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Korean Independent Animation Filmmakers Association, 이하 KIAFA) 구성원들, 활동가, 심지어 교수님들도 연령대가 많이 낮다. 그러다보니 이사들도 젊은 감독들 위주로 구성됐다.
처음 이사 제안을 받았을 때 어땠나.
사실 부담스러웠다. 애니메이션만 만들던 사람이다 보니 조직 구성원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고 조직의 체계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근데 이사 구성원들을 보니까 나랑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있고, 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모두가 ‘으쌰으쌰, 한번 해보자’ 하는 분위기였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소감 한마디 해달라.
참 부럽다. 그동안 한독협은 많은 성과들을 만들어 냈다. 역사가 짧은 우리가 보기엔 상당히 부럽다. 물론 그 사이에 한독협이 고생한 거 생각하면 위로도 하고 싶고 응원도 해주고 싶다. 이번에 보니까 국회에서도 한독협 이름이 언급되고 그러던데 한편으론 우리도 빨리 정치인들 사이에 거론되고 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웃음)
KIAFA는 어떻게 시작했나.
KIAFA는 2004년에 창립됐다. 그 전에는 한독협 애니메이션 분과였는데 활동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 즈음 독립 작품이 많이 나오기 시작하고, 국내외에서 많이 소개되기 시작해 별도의 조직체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시작한 거다.
그 전에는 한독협을 중심으로 활동한건가.
그때 명분상 있긴 했지만 활동이 지금처럼 활발하지는 않았다. 지금보다 훨씬 소수의 인원이었고 별도의 사업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독립애니메이션 영화제 인디애니페스트나 배급사업을 한다. 근데 당시에는 영화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만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들이 없었다. 그걸 타파하고자 KIAFA를 만들게 된 거다.
설립 당시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갔나.
사실 ‘독립’이라는 정의와 정체성에 대해 아직도 계속 논의가 되고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시에는 필요성은 있었지만 명확한 목표는 없었다. 독립애니메이션들이 많이 나오고, 감독들이나 학생들도 많이 배출되고 있는데 그들의 권익보호나 정책발언을 할 수 있는 조직체가 필요했다. 필요성 때문에 협회를 만들고 협회를 운영해 나가면서 논쟁거리들을 계속 만들어 가는 상황이다. 한독협이 부러운 게 오랜 역사 속에서 나름의 담론들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KIAFA는 그런 측면에서는 아직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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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동안 계속 한 작품을 붙잡고 있으면 누구는 ‘도를 닦는다’고 표현한다. 그 안에서 작품과
소통하며 열등감과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
애니메이션, 도 닦는 작업
사적인 얘기 잠깐 해보자. 어떻게 애니메이션을 시작했나.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해 만화부터 시작했다. 만화가 밑에서 문하생 생활을 6개월 정도 했는데 공산품을 찍어내는 공장 같아서 창작을 하는 게 아니라 공장에서 단순한 노동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대학을 가겠다’ 마음을 먹고 애니메이션학과에 지원했다. 그때는 만화랑 애니메이션이랑 다른 줄 몰랐다.(웃음) 근데 전혀 다르지만 해보니 재밌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나 유명 감독들의 작품을 보면 부럽고, ‘나도 저렇게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구도 생겨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을 하게 됐다.
그동안 어떤 활동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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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개인 창작활동을 했다. 2002년 <사이>, 2004년 <남자다운 수다>, 2006년 <별별이야기2>의 <아주까리>를 만들었다. 2004년도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에서 <남자다운 수다>로 수상을 하면서부터 한독협과 인연을 맺었다. <별별이야기2>를 끝내고 평소 친분이 있었던 장형윤 감독과 ‘지금이 아니면 안돼’라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 일을 하고 있다.
어떤 작품인가.
가제인데 <내 여자친구는 얼룩소>이다. 동물들을 활용한 장형윤 감독 특유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남자다운 수다>나 <아주까리>를 보면 남성성에 대한 거부가 느껴진다.
<남자다운 수다>는 의도가 명확했다. 당시 한국사회가 규정한 남성의 모습에 대한 강박이나 열등감이 심해서 이걸 작품으로 해소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관객과의 소통은 이차적인 문제였다. 일년 동안 계속 한 작품을 붙잡고 있으면 누구는 ‘도를 닦는다’고 표현한다. 그 안에서 작품과 소통하며 열등감과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주까리>는 소재 선택을 할 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감독님이 잘하시는 게 그거 아니냐” 해서 하게 됐다.(웃음)
두 번의 도를 닦았는데 열등감과 강박은 해소가 되었나.(웃음)
당시 과도한 남성성에 사로잡힌 나의 모습에 비해 현재 나의 모습은 긍정적인 쪽으로 많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문득 사고방식이나 말투나 행동에서 흔히 ‘마초’ 같은 모습들이 나와, ‘아직도 이러고 있네’라고 괴로워하기도 한다.(웃음) 거기서는 평생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시대가 요구하는 남성성이란 건 늘 변하기 때문에 ‘남성성’ 자체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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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아들에게 포경수술을 강권하는 아버지의 콤플렉스를 그린 <아주까리>(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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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다움’에 대해 강변하는 28세 청년은 어릴 적 자신에게 상처를 준 동네 할머니를 미워하고 괴롭힌다
<남자다운 수다>(2004) |
애니메이션만의 배급 방식을 찾아라
지금 프로듀서 작업을 하는데, 어떤가.
연출하는 사람은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게 작품 내적으로 고민하고 프로듀서는 작품 외적인 활동을 하는 게 보편적 역할이다. 지금은 시나리오 개발 과정이고 이게 끝나면 공동제작사인 청년필름의 프로듀서와 돈을 끌어오기 위한 투자 유치 활동을 하게 된다. 또 스튜디오 유지도 필요하기 때문에 내가 돌아다니면서 생계를 위한 작업을 따오고 있다.(웃음)
창작보다 힘들 거 같다.
장단점이 있다. 편한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는데 어려운 건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다. 창작을 하면 나름 자존심 살리면서 어깨에 힘도 주고 그러는데 프로듀서는 그러면 안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하다보니까 오히려 대인관계도 넓어지고 좋은 측면이 있다. 생각해 보면 자존심도 별거 아닌데.(웃음)
한국은 특수한 경우라 제작자가 감독에게 큰 목소리를 못 내지만 세계 대부분 나라는 제작자의 힘이 감독보다 세다. ‘지금이 아니면 안돼’ 같은 경우 감독과 제작자의 관계는 어떤가. 장형윤 감독이 옆에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다.(웃음)
프로젝트에 따라 감독이 중심인 경우도 있고 프로듀서 중심으로 감독을 캐스팅해 오는 경우도 있다. 근데 우리는 감독 중심의 체제다.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지 않으면 스케줄을 짤 수 없는 프로젝트다. 나나 청년필름의 프로듀서가 스케줄 관리를 한다고 결과물이 나오진 않는다. 그 외의 프로젝트나 스튜디오 유지를 위해 외주 작업을 할 때는 프로듀서 위주로 간다.
감독을 쪼기도 하나.(웃음)
쫀다고 나오는 스타일은 아니다. 좀 잠잠히 기다려줘야 좋은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는 스타일이다. 진지하게 ‘시나리오 언제까지 쓸 거야?’라고 하기 보다는 슬쩍 옆에서 ‘아, 시나리오 언제 나오나’ 혼잣말 하면서 은근히 압박한다.(웃음. 옆에서 작업하던 장형윤 감독 한마디 거든다.)
장형윤: 뭘 은근히 해? 매일 아침마다 ‘시나리오 언제 나오냐’고 구박하면서.(웃음)
사실 장형윤 감독의 전작들을 보고 선택한 거기 때문에 나나 청년필름 모두 장 감독을 믿고 갈 수밖에 없다. 장 감독의 감수성이나 스타일이 관객들에게 반응이 좋았고 그걸 토대로 장 감독이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피디들이 전혀 다른 제작 시스템과 방식을 요구하면 전작보다 작품이 잘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게 나는 편한데 장 감독은 부담스러울 것 같다.
주제를 바꿔 한국 독립애니메이션계의 현황과 문제점에 대해 얘기해보자.
이 문제는 지금 당장의 문제는 아니고 계속 거론이 됐던 문제다. 또 독립애니메이션만의 문제도 아닌데 애니메이션이 재생산을 하기 힘든 매체라는 거다. 개인이 작품을 하면 길게 만들기는 힘들고 한 10분 정도 만드는데 10분짜리로 수익구조를 만들기가 힘들다. 제작기간이 짧은 것도 아니고 보통 1년인데 그걸로 수익을 내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가 힘들다. 그래서 한두 편 만들고 포기하는 감독도 많다.
오랫동안 말이 나왔다는 건 그만큼 풀기 힘든 문제라는 거다. 협회 차원에서는 어떤 논의를 하고 있나.
제작 특성이 일반 영화와 다른데 기존의 배급 체계와 방식대로만 따라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가 시장이 죽은 영화는 유료 다운로드나 디지털 배급 같이 다른 대안을 찾고 있다. 시대적인 상황이나 매체의 특성에 따라서 다양한 배급이나 수익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근데 독립애니메이션계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기존 영화 배급 방식에 안이하게 묻어가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대안을 찾고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게 협회의 일이긴 한데 아직까지는 부족한 것 같다.
구체적인 방법이 나온 게 있나.
애니메이션이 아이들 교육용으로 활용하기 좋은 매체라 단편으로 묶어서 학교나 교육기관에 배급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매체의 장점을 살려서 애니메이션만의 특별한 배급 방식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근데 요즘엔 영화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웃음)
활동가, 한독협을 움직이는 원동력
한독협과는 어떤 관계를 유지하나.
협력 관계다. 한독협은 영화제 등 다양한 사업을 해왔고 나름의 경험과 노하우가 많이 쌓였다. 그래서 우리가 벽에 부딪히면 한독협이나 인디스페이스 활동가들을 찾아가 상의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된다. 같이 ‘독립’이라는 것 때문에 한 패밀리라는 느낌이 좀 있다.(웃음) 그렇다고 의존하는 형태는 아니다. 협력관계가 맞다.
같이 진행하는 사업이 있나.
‘이건 같이 하는 거야’하고 명확하게 선을 긋고 하는 사업은 없다. 서독제를 하면 KIAFA 구성원 중 한명이 집행위원으로 들어간다거나, 우리가 영화제를 하면 한독협 쪽에서 한 명 심사위원으로 온다거나 하는 일이다. 또 독립영화계에서 바라보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시선을 안고 가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언제부터 친분을 맺었나.
서독제에서 <남자다운 수다>로 수상을 한 2004년도부터다. 그 뒤로 영화제도 많이 가고 한독협 모임이나 술자리에도 참석하면서 그들의 정신과 활동하는 모습을 봤다. 그때마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한때는 오로지 창작에만 큰 의미를 두고 가치를 뒀었는데, 한독협을 만나면서 영화를 배급하고 글이나 활동으로 작품을 알려주는 게 참 큰 의미가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
만나면 주로 무슨 얘기하나?
영화 얘기는 그다지 많이 안하는 것 같다.(웃음) 영화나 공적인 얘기 하면 항상 똑같은 얘기만 하니까 사적인 얘기를 많이 한다. 그럴 땐 ‘이들도 나처럼 힘들게 사는 구나. 힘든 게 나만이 아니야’ 위안을 받기도 한다. 나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사는 사람들과 소통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잖나. 비슷한 처지가 낳은 동병상련이다.(웃음)
한독협이 고쳐야할 점이 있다면.
조직의 성격이나 방향에 대해서는 내가 뭐라 말하기는 힘들다. 일단은 한독협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활동하는 취지나 방향 목적은 다 좋은데 적은 보수에 일을 많이 하니까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물론 어렵겠지만 개선이 됐으면 좋겠다. 그것 말고 한독협에서 하는 사업들은 너무 부럽기만 하다.
한독협 활동가는 한정돼 있는데 사업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지역순회상영 등 KIAFA에도 여러 사업 제안이 많이 들어온다. 근데 먼 지방에 작품 들고 상영하러 가면 기껏해야 두세 명 보러 온다. 취지는 너무 좋지만 그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다. ‘사무국의 활동가들이 그렇게까지 고생해야 하나’, ‘그런 사업을 해야 하나’하는 생각도 한다. 취지에 대해선 100% 공감한다. 하지만 여건이 그렇지 않다는 거다. 그건 한독협도 비슷할 것 같다.
방향은 옳지만 방법적인 차원에서 좀 더 고민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한독협도 이미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거다. 관객도 줄고 DVD 시장도 죽었다. 극장에 가지 않고 집에서 컴퓨터로 클릭으로 하는 게 더 쉽고 편하니까. 이렇게 환경이 변하는데 독립영화 진영에서는 얼마큼 대처를 하고 있나 묻고 싶다. 우리도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씨네 21i’와 협의할 예정이다. 환경이 변하고 있다면 흐름을 알아야하지 않을까.(이때 시나리오 작업을 하던 장형윤 감독이 본격적으로 인터뷰에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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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 자체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내부에서 움직이는 활동가들이다" |
장형윤: 행사를 주최하는 입장이 되다 보니 개선점이 아닌 걱정이 생긴다. ‘활동가들이 계속 생길까’ 하는 것이 걱정이다. 지금까지는 영화를 로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요새는 좀 더 현실적인 젊은이들이 출현하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다 별로고 옛날이 좋았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런 걸 계속 할 사람이 계속 있을까 싶어서 하는 걱정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다가 어느덧 30대가 되면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겠는가. 이게 오래하기는 굉장히 힘든 일이다.
홍덕표: KIAFA도 마찬가지다. 협회를 운영하고 움직이는 주최는 감독이나 회원들이 아니다. 회원들은 회비내고 ‘회비 냈는데 왜 아무것도 안 해주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불만투성이인 사람들이다.(웃음) 조직 자체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내부에서 움직이는 활동가들이다. 한독협이 부러웠던 것도 우리 협회에 비해서 활동가들이 많다는 거였다. 활동가들 중에서 이 일을 문화활동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꾸준히 있을까?
장형윤: 이건 단지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차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이 계속 바뀌는 과정에서도 주축이 되는 인물들이 계속 남아 있어야 한다. 그 사람들이 경험을 쌓고 논의를 발전시켜 한독협, 독립영화에 대한 다양하고 풍성한 담론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려면 활동가들이 일만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하는데, 상황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
독립영화, 경쟁력을 키워라!
독립영화인으로서 현재 고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경쟁력에 대한 고민이 크다.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떻게 보면 엔터테인먼트와 무관하지는 않다. 독립적으로 작업 하는 창작자들이 나름의 작가 정신을 갖고 작업하는 것이 의미 있고 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일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실제로 대중에게 접근했을 때 기술적인 부분, 홍보, 배급과 같은 마케팅 부분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지금이 아니면 안돼’도 세 명이 있긴 하지만 독립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했던 사람들이다. 지금 상업적 방식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기획하다 보니 그런 경쟁력 측면에서 한계를 느낀다.
KIAFA 구성원들끼리 그런 부분에서 도움을 주고받는 편인가.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우리처럼 개별적으로 작업을 해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독립적인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작가 정신을 지키면서 만들 수 있다면 대기업에서 자본을 끌어와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방식을 모른다. 자본의 흐름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데 협회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이 나처럼 애니메이션이 좋아서 시작한 분들이기 때문에 그런 걸 잘 모른다. 나도 <내 여자친구는 얼룩소> 때문에 투자사를 만나면서 전혀 몰랐던 정보나 사실을 알게 되니까 ‘내가 이 바닥에서 그동안 뭘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농협 어떤가. 최근 이미지도 안 좋아졌는데, 이미지 개선의 기회를 제공해라.
장형윤: 동물들이 나오니까 농협보다는 축협이 좋겠다.(웃음)
하하. (다시 정색하고) 앞으로 상업 애니메이션계와 접합점을 늘려가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서로 바라보는 입장이나 시선을 좁힐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협회가 새로 생기면 기존의 조직들이 약간 경계하는 게 있다. 또 독립영화계가 상업영화계를 비판하듯이 우리도 그런 비판 의식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한 오해와 벽 때문에 교류나 소통의 장이 쉽게 열리지는 않는 것 같다.
충무로는 독립영화계에 적대적인 시선은 없다. 사실 별다른 감흥이 없는 거 같기도 하고. 근데 애니메이션계는 영화계와는 좀 다른 거 같다.
시장이 좁아서 그렇다. 밥그릇 싸움이라고 해야 하나. 시장이 크고 활성화 되어 있으면 덜 하겠지만 애니메이션 쪽은 시장이 워낙 좁으니까 경계하고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아이코닉스에서 만든 <뽀롱뽀롱 뽀로로> 한 편이 애니메이션 시장을 거의 독점하는 상황이다. 한 업체가 애니메이션 시장 전체를 독식할 수 있을 만큼 좁은 울타리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뭘 하거나 새로운 조직이 생기면 긴장을 할 수밖에 없는 거다.
KIAFA가 할 일이 많다. 마지막으로 한독협의 새로운 10년을 위한 제언을 해달라.
처음 외부에서 한독협을 봤을 때 날이 선 느낌이 있었다. 독립영화라는 단어의 뉘앙스 때문인지도 모르겠는데 공격적이고 사회나 주변을 포용하기 보다는 비판만 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사회나 약자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에 관심 있어 하는 사람들이 봤을 때는 나처럼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좀 있을 것 같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조직체였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사회 참여나 비판의식은 앞으로 계속 갖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까 얘기 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좀 잘 먹고 살면서 좋아하는 일도 했으면 좋겠다.(웃음)